나는 천문학을 좋아하는 개발자이다. 일식이나 월식, 혹은 혜성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깜깜한 밤에 혼자 나가보기도 하고, 밤하늘에 유독 빛나는 행성들을 찾아보는 취미도 있다. 나에게 오로라는 북유럽 어디쯤으로 두꺼운 패딩을 들고 떠나야 볼 수 있는 존재였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오로라가 잘 보이는 도시들로부터 사방으로 멀리 떨어져있으로 아마 언젠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볼 수 있지 않을까 희미한 소망으로 잊혀졌을 즈음, 작년 캐나다에 있는 가족이 오로라 사진을 보내주었다. 이번 글에서는 오로라 예측 앱을 직접 만들어 오로라 헌팅을 다녀본 경험을 공유하려 한다.
2025년과 오로라
태양 활동은 평균 11년 주기로 변화한다. 그리고 지금이 극대기이므로 평소에는 오로라가 보이지 않는 지역에서도 오로라를 볼 확률이 높다. 작년에는 두 번 큰 태양 활동이 있었고 멕시코, 심지어는 한국에서도 오로라가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의 가족이 있던 캐나다 오타와에서 이 오로라가 보였던 것이다.
4개월 간의 캐나다 여행
물론 오로라 하나만으로 캐나다 장기 여행을 떠난 것은 아니다. 나는 요즘 여러 개의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장기적으로 나에게 올 기회가 더 적은 경험을 우선적으로 잡고 있다. 커리어 관점으로는 내가 만들고 싶은 프로덕트를 원없이 창작해보기 위해 프리랜서를 선택하였고, 거주지 관점으로는 가족이 있어 방 한 칸을 빌리면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캐나다를 선택하였다. 또한 점점 더워지고 습해지는 한국의 여름을 피하면서 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야 하는 글로벌 프로덕트들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DIY 오로라 앱
어려운 기존 앱
막상 캐나다에 가보니, 오로라는 운과 시간의 싸움임을 알게 되었다. 다운로드 수가 높은 순으로 오로라 앱들을 보니 Kp 지수와 내 위치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앱마다 확률이 다르고 표기된 파라미터와 차트들이 생소하여 어떤 알고리즘으로 예측하는 것인지 인지하기 어려웠다. 오로라 헌팅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익숙한 사용자들에게는 친숙하겠지만, 나는 이 데이터만으로 4개월 안에 오로라를 볼 수 있을지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따라서, 오랜만에 천문학을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초심자에게 쉬운 오로라 앱(Aurora Eos)을 개발해보기로 했다. 나의 오로라 헌팅에 활용할 목적도 있었지만, 지금이 태양 극대기이므로 나처럼 오로라 헌팅에 처음으로 도전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더불어 NASA가 제공한 API를 사용해서 앱을 만들어본다는 것에도 큰 흥미를 느꼈다.
첫 프로토타입의 실패
첫 프로토타입에서 제일 공들인 것은 3D 오로라 오발이었다. 기존 2D 지도에서 벗어나 지구 자기장 활동이 얼마나 활발한지 더 직관적으로 아름답게 확인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2주만에 필수 기능만으로 빠르게 구현된 프로토타입으로 실제 오로라 헌팅을 해보았지만, "Kp 지수" 만으로는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태양 활동인 서브스톰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정보량을 줄이고 쉽게 만드는 것은 사용자가 이해하기는 쉽지만 예보의 정확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다시 처음 정의했던 문제로 돌아가서 원인을 근본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글, 논문을 찾아보며 오로라의 정의부터 발생 원인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오로라를 제대로 예측하는 법
어떻게 쉽고 정확하게 오로라를 예측할 수 있을까? Aurora Eos를 만들면서 가장 시간을 쏟았던 것은 개발이 아닌, 오로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었다. 내가 고안한 방법은 오로라가 발생하는 원리 그대로를 리포트하는 것이다. 단, 모든 전문 지식은 이해하기 쉽게 일러스트로 표현한다. 태양부터 지구 자기장, 그리고 지구 날씨에 가려지면서 오로라가 우리 눈에 들어오기까지 변수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용자의 지식 성숙도에 따라 난이도를 구분하는 것이다.
나의 오로라 헌팅기
내가 처음 경험한 오로라 헌팅은 상상처럼 환상적이지만은 않았다.
- 평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30분 정도 차를 끌고 어두운 곳을 찾아야 한다.
- 생각보다 더 어둡고 깜깜한 환경이어야 한다.
- 태양 자전에 의해 28일을 주기로 태양 활동이 반복된다고 하지만 오타와에서는 더 강한 태양활동이 필요하므로 다른 요소들도 파악해야 했다.
첫 번째 오로라 헌팅은 너무 호기롭게 시작하였다. 집 근처 10분 거리의 가까운 공원으로 갔지만 생각보다 도시의 가로등이 밝았고 구름도 잔뜩 끼어 있었다. 두 번째 헌팅에서는 30분을 달려 깜깜한 공터에 도착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또한 너무 어둡고 주변에 사람도 없어서 으스스한 기운에 도망쳤다. (ㅋㅋㅋ)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오로라는 자기극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북반구에서는 북쪽 하늘(북두칠성 근처)를 보았어야 했다.
한국으로 귀국이 일주일 남았던 시점, 다시 오로라 경보가 울렸다. 이미 두 번이나 허탕을 쳤기 때문에 기대가 많이 낮아졌지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공터로 갔지만 여전히 오로라를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생각보다 여러 대의 차량이 우리가 있는 공터를 지나쳐 다른 곳을 향하는 듯 했다. 차로 30초 정도 이동하여 다른 주차장에 들어서자 하늘에 초록색 무언가가 보였다.
사실 오타와는 고위도가 아니기 때문에 오로라가 사진만큼 극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한시간 정도 오로라를 구경하다보니 미세한 오로라 커튼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깜깜한 밤하늘에서 별을 질리도록 구경한 것이 정말 좋았다. 오랜만에 별자리 앱을 켜고 여러 별들을 구경했다.
앞으로의 계획
직접 오로라 앱을 만들지 않았다면 오로라 예보가 발생했음에도 보이지 않는 오로라에 실망하며 더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직접 만든 앱으로 오로라를 본 것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같이 오로라를 본 가족은 덕분에 오로라 여행 비용을 아꼈다며 매우 좋아했다.. ㅋㅋㅋㅋㅋ)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캐나다를 떠나온 9월이 연중 오로라 헌팅 최적기라고 한다. 실제로 내가 떠나고 몇 주 후 강한 태양 폭풍으로 오로라가 더 잘보였다고 한다.
비록 나는 서울에 거주하고 있어 오로라를 볼 확률이 매우 낮지만, 이 앱만큼은 나와 같은 초보 오로라 헌터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온 현재, 비행 항로에서 오로라를 예측하는 것과 홈 화면 예보 위젯 등 기존 오로라 앱에는 없는 기능들을 만들어보고 있다. 또한 다국어 기능을 추가해 영어권이 아닌 사용자들이 더 친숙하게 오로라를 배울 수 있게 개선하였다.
Aurora Eos를 사용하는 모든 사용자들의 성공적인 오로라 헌팅을 바란다.